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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한국 우주인 훈련일기(23편)

  • 부서명 관리자
  • 작성일 2007-11-01
  • 조회 11034

 

훈련일기 (고산)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주선 좌석 모양의 틀에 몸을 누이고 주위에 석고를 부어 몸에 꼭 맞는 좌석을 만든다.>
 


시간은 참 빨리 흐른다. 가가린 우주센터에서의 훈련도 어느덧 반환점을 돌아 목적지까지는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만큼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주에는 "Expedition16"의 승무원들과 말레이시아 최초의 우주인이 우주선 발사대가 있는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로 떠났다. 지난 4월, "Expedition15"의 승무원들을 떠나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들은 벌써 지구로 귀환할 준비를 하고 있고 새로운 승무원들이 그 자리를 채우러 떠난다. 그리고 이제 정확히 그만큼의 시간이 더 흐르면, 드디어 러시아 우주인 ‘세르게이’와 ‘알례그’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다. 그야말로 아찔한 속도로 시간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다.

‘바이코누르’로 떠나는 우주인들을 배웅하고 ‘세르게이’, ‘알례그’와 함께 앉아 아침 식사를 하면서 시간이 참 빨리 흐르는 것 같지 않으냐고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둘 다 시간이 더 빨리 흘러야 한단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시간이 빨리 흘러야 빨리 우주에 갈 수 있지 않으냐고 설명한다. 얼핏 들으면 어린 아이들의 단순한 대답처럼 들리지만, 사정을 아는 나에겐 그 말이 아프게 들린다.

현재 러시아 우주인들은 비행을 하기 위해 매우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실제 우주인 훈련 기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지만 러시아가 국제 협력 사업인 ISS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에 참여하고 나서는 경험이 있는 우주인들을 다시 우주에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나마 남아있는 자리도 다른 나라의 우주인들에게 할당되는 경우가 생겨서 초임자 우주인들이 우주에 나가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평생 우주인 훈련만 받고 비행을 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 ‘세르게이’와 ‘알레그’도 각각 98년과 96년에 우주인 훈련을 시작했다고 하니, 제발 빨리 그리고 무사히 시간이 흘러서 우주 비행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는 우주 비행을 위한 모든 준비가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 지난주에 벌써 새 우주복이 제작에 들어갔고, 몸에 딱 맞는 우주선 좌석을 만들려고 내 체형대로 석고형을 뜨기도 했다. 그리고 우주에 올라가 있는 동안 먹게 될 식사의 메뉴도 정했다.

우주복은 당연히 개개인의 몸에 정확히 맞아야 한다. 평상시에는 우주복이 조금 크거나 작아도 상관이 없겠지만, 우주복 내부 기압이 일정수준 이상 높아지면 우주복이 굉장히 딱딱해지는데, 만일 이때 우주복이 작아서 관절 부분이 눌린다거나 반대로 너무 커서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우주복뿐만 아니라 우주선의 좌석도 빈틈이 없이 몸에 꼭 맞아야 발사와 착륙 때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우주인이 몸을 틀 안에 눕히고 주위에 석고를 부어 넣는 원시적인(?) 방식으로 개개인의 체형에 꼭 맞는 좌석을 만들게 된다.

 


<우주에서 먹을 식단을 짜기 위해 맛을 보고 메뉴를 정할 약 100여종의 러시아 우주 음식>

우주복과 우주선의 좌석만 개인별 맞춤으로 제작되는 것은 아니다. 고립된 환경에서 매일 비슷한 생활을 반복하는 우주인들은 쉽게 식욕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에 가기 전 각자의 식성을 고려해서 개개인의 우주인이 선호하는 음식으로 식단을 짜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맞춤형으로 식단을 짠다고 하더라고 장기간 우주에 체류하게 되는 우주인들은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식사를 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리 길지 않은 우주비행임에도 불구하고 약 100 여종의 러시아 우주 음식을 맛보고 나서 메뉴를 정해야 했다.

이처럼 하루하루 정해진 훈련과 우주비행을 위한 준비로 꽉 짜인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게 한 주, 한 달이 정신없이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시간은 언제나 그냥 무심히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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