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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연구원

문제는 기술 자립이다

  • 부서명 관리자
  • 작성일 2016-08-12
  • 조회 5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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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신문에 우리나라가 무려 20년 가까이 수조원의 돈을 액체엔진 로켓개발에 쏟아 붓고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보도를 했는데요. 기사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액체로켓엔진은 이미 선진국이 50∼60년 전에 완성한 기술로 여러 자료를 통해 기술이 공개되어 있고, 최근 선진국들은 4~5년 만에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98년 액체엔진 개발을 시작해 19년의 시간 동안 2∼3조원의 예산을 들이고도 발사체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고, 또 발사를 연기하겠다고 한다”

과연 사실일까요?

우선 액체엔진 기술이 공개된 기술인가라는 점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로켓 엔진 기술은 많은 자료를 통해 접할 수 있고 논문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개되어 있다고 해서 실제 엔진을 만들 수 있거나 엔진을 만들어서 제대로 된 성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에 개발된 기술이라고 해도 실제로 우리 스스로 그것을 구현해보는 것과는 큰 괴리가 있습니다. 책속의 지식일 뿐, 그것을 실제로 성능 좋은 엔진으로 만드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NASA가 달 탐사에 사용했던 새턴-V 로켓의 설계도가 남아 있다고 해서 다시 그 엔진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죠. 또 하나 이미 공개되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기술이라면 로켓 기술 이전을 국제적으로 엄격히 통제하는 국제조약(MTCR, 미사일기술통제체제) 같은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발사체 기술은 선진국이 기술 이전을 기피하는 민감한 전략 기술이라는 점입니다. 평생 엔진개발에 몰두하고 엔진성능시험에 매달렸던 장인들의 경험과 기술로 만들어진 여러 로켓들이 우주로 쏘아졌지만 그들에게도 수많은 시행착오와 축적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비근한 예로, 항공기나 자동차 등은 로켓보다 더 많은 정보가 공개되어 있음에도 실제로 이를 개발하고 상용화한 나라는 아주 드뭅니다. 책에 있다고, 공개되었다고 다 개발에 성공할 수 는 없는 것이죠. 우리나라는 왜 대형 여객기 등 항공기를 못 만들면서 왜 자동차는 만드나요?

시행착오와 실패 없이 가면 좋겠지만 기술적 난제들이 많고 이를 해결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게 마련입니다. 우주 선진국들도 우주 로켓 시험과 발사에서 지속적인 실패를 겪고 있습니다. 심지어 돈을 받고 위성을 발사를 해 주는 선진국의 상용 로켓도 실패를 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미국 스페이스X사의 팔콘9, 오비털사이언스의 안타레스, 러시아의 프로톤 등등이 발사 도중 폭발하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해외 엔진 개발 사례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엔진의 성능과 스펙은 다르지만 액체산소와 케로신을 추진제로 쓰는 엔진, 즉 액체로켓엔진의 평균 개발 기간은 9.17년입니다. 우주발사체는 신뢰도가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엔진을 새로 개발해 로켓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험을 반복해 신뢰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물리적으로 필요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한국형발사체는 엔진개발과 더불어 엔진 연소시험시설을 짓고 발사체 체계개발도 함께 해 나가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죠.

이미 좋은 우주 로켓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는 나라들도 오래 기간 축적된 기술과 관련시설, 산업체 등 기반이 잘 갖춰져 있음에도 새로운 발사체 개발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입니다. 미국의 우주로켓기술을 그대로 전수받은 일본의 엔진 기술 자립 역사를 잠시 되짚어 보겠습니다. 일본은 1983년 110톤급 액체엔진 LE-7 개발에 착수, 200초 연속 연소시험에 성공할 때까지 무려 7년이 걸립니다. 이후 H-II 로켓에 장착돼 실용화될 때까지 또 5년이 걸립니다. 총 개발 시간은 무려 12년입니다. LE-7 이전에 개발된 LE-5 엔진 역시 12년의 개발 기간이 걸렸습니다. 다시 그 이전 MB-3 엔진 개발에 약 5년이 걸렸습니다. 일본은 현재 차세대 발사체 H-III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발사체는 기존 운영 중인 H-II 발사체 엔진 기술 등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개발 기간은 8년(‘13~’20), 개발 예산은 1,900억엔(약 2조 2천억원)이 투입된다고 합니다.

중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장정(Longmarch) 2, 3, 4호를 운용 중인 중국은 새로운 엔진 개발을 위해 러시아의 발사체 엔진인 RD-120을 기반으로 무려 15년이라는 연구 기간을 거쳐 RD-120 보다 성능을 높인 YF-100 엔진을 개발합니다. YF-100 엔진은 장정 5호, 6호 등 중국의 신규 발사체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까운 일본과 중국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인내하며 로켓 기술을 자립하고 발전시켜 온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상용 우주 발사서비스 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럽은 어떨까요? 유럽우주국(ESA)는 2014년 말 신규 발사체 아리안-6 개발 계획을 승인했습니다.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새로운 발사체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아리안-6는 정부와 산업체의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됩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국가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루마니아, 스페인, 스웨덴, 스위스 등 유럽연합에 소속된 무려 12개국입니다. 주요 산업체로는 유럽의 막강한 방위산업체 에어버스(Airbus)와 샤프란(Shafran)이 참여합니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죠. 첫 번째 발사 계획은 공식 승인 시점으로부터 6년 후인 2020년으로 잡혀 있습니다.

우주 로켓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을 보겠습니다. 우주 로켓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스페이스X는 2002년 설립되어 10여년 만에 강력하고 신뢰성 높은 발사체 팔콘-9을 완성 합니다. 그런데 스페이스X의 공동 설립자이자 기술책임인 탐뮬러는 미국의 대형 방위산업체인 TRW에서 로켓 엔진 개발에 참여해 온 인물입니다. 팔콘-9 로켓의 엔진인 멀린 엔진에는 TRW, 그리고 미국 NASA를 중심으로 수 십 년간 파생된 기술과 부품이 빠른 개발 성공의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죠. 현재 스페이스X의 직원은 무려 5천명이죠. 항우연의 로켓 개발 인원은 250명인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를 보겠습니다. 한 신문이 우리나라가 액체 엔진 개발을 19년 전부터 시작했다고 주장한 근거는 우리나라 최초의 액체추진 과학로켓 KSR-Ⅲ의 개발 시점인 1998년으로부터 역산한 것입니다. 단순하게 액체엔진이라는 틀에서 시작 시점만을 본다면 맞는 말이죠. KSR-Ⅲ는 길이 14m, 직경 1m, 총중량 6톤에 액체산소와 케로신을 연료로 사용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액체추진 로켓이었습니다. KSR-Ⅲ는 본격적인 우주발사체 개발을 위한 전 단계의 기술 확보를 위한 것으로, KSR-Ⅲ 개발사업을 통해서 관성항법장치, 추력벡터제어 시스템, 추력기 자세제어 시스템, 복합재 탱크 등의 경량화 구조 기술, 탑재전자장치 등 우주 로켓에 적용되어야 하는 기술들이 국산화 했습니다.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당시 개발했던 KSR-Ⅲ의 액체엔진은 추력 13톤급으로 ‘가압식’이었습니다. 액체로켓엔진에서 다량의 연료와 산화제를 연소기에 밀어 넣는 방식은 크게 가압식과 터보펌프 방식으로 구분되는데 ‘가압식’은 주로 초기 로켓에 적용됐던 방식입니다. 가압식 액체엔진은 기술적으로 간단하기는 하지만 무게가 무겁고 불안정한 측면이 있어 현재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당시 우리의 기술이 부족한 탓에, 본격적인 우주 발사체 개발 전 단계에서 기반 기술 확보 차원에서 개발된 액체엔진 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발사체 엔진은 터보펌프 방식의 75톤급 액체엔진입니다. 터보펌프 방식은 터빈이 빠른 rpm으로 고속회전하면서 추진제를 연소기로 뿜어 넣어 강력한 연소를 만들어 냅니다. 특히 극한 조건이 총망라되어 가압식 엔진과는 기술적인 난이도와 복잡도 면에서 완전히 차원이 다른 엔진입니다. 터보펌프식 액체엔진 개발을 위해 예산이 투입된 것은 나로호 개발 때부터입니다. 항우연은 나로호 개발과 함께 독자 발사체 개발을 대비하기 위해 30톤급 터보펌프식 액체엔진의 핵심부품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 그 부품들을 시험할 수 있는 시험설비가 없어 해외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부분적이고도 제한적으로 다른 나라의 시험설비를 빌려가며 기술을 축적해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터보펌프식 액체엔진 개발의 원년은 2009년으로 보는 것이 적정합니다. 나로호 발사 시도와 함께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을 위한 선행연구가 착수된 시점이 바로 그때이기 때문입니다. 한 신문의 논리대로 우리나라가 한국형발사체에 사용될 액체엔진을 19년째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면, 미국, 러시아 등이 지금 새로 개발하고 있는 엔진은 무려 60년 동안이나 ‘개발 중’인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예산 얘기도 해보겠습니다. 해당 언론은 2∼3조원의 예산이 헛돈이 됐다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럴까요? 액체추진과학로켓 KSR-Ⅲ 개발사업은 1997년 12월부터 2003년 2월까지 총 5년 2개월이 걸렸고, 투입 예산은 780억원입니다. KSR-Ⅲ가 개발사업이 남긴 기술적 성과는 앞서 기술했습니다. KSR-Ⅲ의 뒤를 이은 나로호 개발사업에는 10년 간 5,5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습니다. 나로호 개발 사업은 인공위성을 목표 궤도에 정확히 투입하는 상단 로켓 개발, 페어링분리, 발사운용, 발사통제시스템 등 우주 로켓 개발과 발사에 필요한 기술을 남겼습니다. 발사체 최강국인 러시아와의 국제협력을 통해 한국형발사체 개발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위성발사를 위한 우주센터도 확보했습니다.

독자적인 우주 수송수단인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에는 2010년부터 10년 간 총 1조9572억원의 예산이 투입됩니다. 발사체 엔진의 설계와 제작, 시험, 10종의 거대한 추진기관시험설비 및 시설, 장비 구축, 발사체 조립, 인증, 발사 등 모든 비용이 포함된 예산입니다. 이 예산 중에서 약 4천억원으로 엔진 개발을 위한 시험설비가 만들었습니다. 나로호 발사 이후 나로우주센터는 엔진개발 시험장으로 크게 변화했습니다. 앞으로 다른 나라의 시험설비를 빌려 엔진개발을 해야 하는 서러움 없이 우리가 개발하는 엔진을 우리가 만든 시설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곳에서는 7톤급 액체엔진과 75톤급 액체엔진에 대한 연소시험이 한창입니다. 최근에는 75 톤급 액체엔진 시험모델 1호기가 145초 연속 연소시험이 성공적으로 수행됐습니다. 75톤급 액체엔진은 1단 비행 구간에서 127초, 2단 비행 구간에서 143초 동안 연소되어야 하는데, 전체 목표 시간을 넘어서는 성능을 보인 것입니다. 시제 1호기에서 말입니다. 오는 10월부터는 안정성을 더욱 향상시킨 2호기 시험이 수행됩니다. 75톤급 액체엔진은 총 17기의 시험모델이 제작돼 총 200여 차례의 시험을 거치게 됩니다. 발사되는 환경, 비행 중 환경 등을 모두 가정한 시험들이 진행되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성능과 신뢰도, 안정성이 검증되면 실제로 발사체에 적용되게 됩니다. 1회 시험하는데 1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 합니다. 누적되는 시험을 통해 얻게 되는 결과에 따라 시험 기간은 단축될 수도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발사 시기나 일정이 조정될 가능성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엔진 개발과정에서 연소불안정이라는 매우 어려운 기술적 난관을 극복하는데 이미 1년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추진제 탱크 용접 기술을 확보하는 것도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연구원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는 산업체 직원들이었습니다. 해 보지 않았던 것을 처음 할 때 겪는 어려움도 있지만, 필연적으로 생기는, 이론도 없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수많은 설계 변경과 반복적인 시험을 통해 차즘 오류를 줄여나가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엔진 개발에 연소불안정이 생기고 이를 극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기술이 완성되기 까지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의 발사체 개발 상황을 선진국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큽니다. 기술, 인력, 시설, 부품, 예산 등 여러 측면에서 아직 선진국들과는 상당한 괴리가 큽니다. 알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힘겹게 하나하나를 파헤쳐 가고 있는 중입니다. 서둘러 가겠지만,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명감으로 우리 로켓 개발을 위해 묵묵히 연구하는 연구원들에게 “실패를 두려워 빨리빨리 못 쏜다”. “만만디 기술개발” 등 사실과 다른 근거 없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사실에 입각한 비판은 언제든 받아들이겠으나 근거 없는 비난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독자적인 우주발사체 기술 확보를 위해 항우연과 산업체가 함께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들이 우주발사체 기술 개발의 진정한 주역이자 진실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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