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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연구원

로켓 불모지에서 나로호 개발... 이제 한국형발사체로 승부

  • 부서명 관리자
  • 작성일 2016-11-10
  • 조회 9392

갈망하는 기술이 없을 때 그 기술을 확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우주발사체 기술도 마찬가지. 우주발사체를 개발, 발사해 본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가 기술 확보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전문가의 논의 끝에 정부는 기술 확보를 위한 가장 빠른 전략적 방안으로 러시아와의 협력을 추진했다. 미국, 일본 등은 협력에 응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로호는 12년의 대장정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경험과 기술로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한국형발사체 개발 계획서를 썼다. 그리고 지금 한국형발사체 개발이 한창이다.

나로호(KSLV-Ⅰ) 발사 모습

2013년 1월 30일.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인 나로호(KSLV-Ⅰ)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우주개발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두 번의 발사 실패와 수차례의 발사 연기.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고,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우주강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실패가 없으면 성공도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내 실패를 딛고 성공했다. 나로호를 딛고 이제 새로운 여정에 나섰다. 우리나라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한국형발사체(KSLV-Ⅱ)를 오는 2020년 발사할 예정이다. 한국형발사체는 1.5톤급 실용위성을 지구 저궤도(600~800km)에 투입할 수 있는 300톤급(75톤급 엔진 4기 묶음) 3단형 발사체로, 엔진 개발과 연소시험에 착수해 시험 발사와 본 발사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나로호의 투입 고도는 300km,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발사체는 이보다 훨씬 높은 600~800km이다. 탑재체의 무게도 나로호는 100kg이었지만, 한국형발사체에는 1.5톤의 위성을 탑재할 수 있다. 투입 고도와 탑재체의 무게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주기술과 이와 관련된 국가적 위상도 그만큼 배가된다. 나로호 발사 직후 한국형발사체 개발에 곧바로 착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형발사체가 향하고 있는 것은 지구 궤도 저 너머다. 한국형발사체에 무인 탐사선을 실에 달에 보내기 위한 달 탐사 사업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머지않아 우리 발사체로 쏜 우리의 탐사선이 달 표면에 착륙하게 될 것이다.

나로호, 국내 우주개발 새로운 전기

나로호는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극적 전환점이었다. 러시아와의 국제협력을 통해 이른 시일 안에 많은 기술을 축적한 뒤 독자 개발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독자 개발’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나로호 발사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해묵은 오해가 반복되고 있다.

전 세계 어디에도 ‘독자적’으로 로켓을 개발한 나라는 없다. 우주발사체 분야에서 최강으로 꼽히는 미국과 러시아도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V-2 로켓 기술을 발판으로 개발했다.

또 우주선진국들은 우주개발 과정에서 예외 없이 수많은 시행착오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우리나라처럼 우주개발의 역사가 짧은 나라에서, 국제협력을 통해, 그렇게 적은 시행착오로, 독자적인 우주발사체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우주개발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주선진국보다 30~40년 정도 늦은 셈이다. 출발은 늦었지만, 성장과 발전 속도는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관측위성 분야에서는 세계 6~7위에 올랐고 세계에서 13번째로 우주센터를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마침내 2013년 1월 30일 국내에서 나로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우주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 필수적인 인공위성, 우주발사체, 발사장의 3박자를 모두 갖추게 된 것이다.

21세기는 우주시대다. 수많은 실패와 위험이 상존하고 있지만, 역시 수많은 나라가 우주개발에 나서고 있다. 우주기술은 한 나라의 국력과 과학기술력을 상징한다. 국가 전략적 측면은 물론 미래를 여는 첨단 산업 발전을 주도한다. 하지만 우주개발 분야는 대규모 투자보다 성공 가능성이 작다. 여전히 선진국 중심으로 우주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일본, 중국, 인도 등 우주 선진국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술을 배우거나 수입해서 지금의 우주 강국이 됐다.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는 세계 우주산업을 선도한 나라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V-2 로켓에 참여한 과학자와 기술자를 확보했다.

군사 목적으로 개발된 V-2는 애초 목적을 수행하기 어려운 실패작에 가까웠지만, 미국과 러시아 로켓 기술이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잠재력을 발견한다. 그 잠재력은 당시 승전국이었던 미국과 소련, 그리고 프랑스의 몫이었다. 그동안 개발된 모든 발사체는 독일의 V-2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

불꽃 튀는 우주 경쟁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전략용 로켓의 기술혁신도 급진전했다. 본격적인 우주 경쟁은 구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까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했던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미국도 이듬해인 1958년 항공우주국(NASA)을 발족하면서 본격적으로 우주경쟁에 뛰어들었다.

더 큰 탑재체를, 더 멀리 쏘아 올리기 위한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로켓에서 내뿜는 불꽃만큼이나 뜨겁고 강렬했다.

아틀라스(Atlas), 타이탄(Titan), 새턴(Saturn), 델타(Delta) 등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발사체는 눈부신 기술적 발전을 이뤘다. 특히 순수 우주발사체로 개발된 새턴 로켓은 그동안 소련에 뒤처져 있던 발사체 능력을 단번에 뒤집는 계기를 마련했다.

군사무기로서의 효용성을 일찌감치 눈치 챈 소련은 극심한 경제난에도 로켓 개발에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47년 V-2를 모체로 한 R-1 로켓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뒤, 이를 업그레이드시킨 R-7으로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우주로 쏘아 올린다.

프랑스는 미국과 소련을 제외하고 자력으로 발사체를 개발한 유일한 나라다. 프랑스 역시 V-2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다이아몬드(Diamant) 로켓을 개발한다. 이어 순수 상업용 아리안(Ariane) 발사체 개발에 성공하며 유럽국가(EU)의 우주개발을 주도한다. 현재 개발 중인 아리안 5ME는 무려 11.2톤, 아리안 6은 6.6톤의 페이로드를 정지 전이궤도에 발사할 수 있다.

일본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위성 발사능력을 구축했다. 또 정지궤도 상에 위성을 올린 세 번째 국가이다. 미국의 델타 로켓 기술을 전수하면서 로켓 개발의 역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다.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기술로 N 시리즈 로켓을 만들면서 발사체 기술을 축적한 일본은 1986년 8월 독자적인 H-1 로켓 발사에 성공하면서 세계 톱 수준의 우주 강국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중국 역시 초기에는 러시아로부터 탄도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이전받아 발사체 개발에 착수했다. 80년대 후반에는 미국으로부터도 제한적이지만 일부 기술을 이전받기도 했다. 1970년 4월 장정 1호로 명명된 로켓으로 첫 번째 위성 발사에 성공한 중국은 1990년 4월 장정 3호 발사체로 아시아 1호 위성을 궤도에 쏘아 올리면서 본격적으로 세계 상업 발사서비스 시장에 진출했다.

이 밖에도 인도, 브라질, 이스라엘 등이 후발국으로 우주발사체 대열에 합류한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아 우주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었던 일본, 중국과 달리 이들 국가는 G7 선진국 중심으로 만든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 규제를 받아야 했다. 이에 따라 주로 미사일 개발과 연계해 발사체의 기술혁신을 도모하게 된다.

북한도 로켓 개발에 가세해 지난 1998년 8월 대포동 미사일을 개량한 광명성 1호를 발사한다. 이어 2012년 말 광명성 3호, 2016년 2월에는 광명성 4호 발사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오재건 전 연구위원은 ‘우주산업의 기술혁신 패턴과 전개 방향’ 논문을 통해 “우주발사체 1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소련,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V-2 로켓에 참여한 과학자와 기술자를 확보해 군사용으로 전략용 로켓인 미사일 개발로부터 기술혁신을 추진했다”고 진단했다.

60년대 이후 미·소 간 인공위성 발사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군사위성과 과학위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이에 따른 기술혁신이 군사용 로켓 개념에서 우주개발을 위한 탐색이나 화물을 운반하는 발사체 개념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60년대 이후 미·소 간 인공위성 발사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군사위성과 과학위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이에 따른 기술혁신이 군사용 로켓 개념에서 우주개발을 위한 탐색이나 화물을 운반하는 발사체 개념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KSR-1 발사 모습

KSR-Ⅰ에서 나로호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로켓은 1958년 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서 개발했다. 1959년 성공적으로 로켓을 발사했지만, 연구소가 해체되면서 로켓 연구는 중단됐다.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ADD)로 부활하면서 로켓 연구가 재개되고 1990년대 부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로켓 개발연구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우주발사체 개발은 1990년 1단형 과학로켓(KSR-Ⅰ)이 출발점이다. 이어 2단형 중형과학로켓(KSR-Ⅱ)과 액체추진 과학로켓(KSR-Ⅲ)을 통해 기반 기술을 확보했다. KSR-Ⅰ 개발을 통해 한반도 상공의 오존층 상태를 측정하는데 성공했으며, 150kg의 과학탑재물을 싣고 고도 35~75km까지의 대기층을 탐사했다. 2단형 중형과학로켓 KSR-Ⅱ 개발로 탐사 고도를 137km까지 높였으며, KSR-Ⅲ는 국내 최초의 액체추진 로켓으로 개발됐다.

이런 과학로켓 개발과 발사는 발사체의 시스템, 구조, 추진 및 탑재 분야로 세분화해 기술 개발과 시스템 통합이 진행됐다. 과학로켓 시리즈는 나로호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수차례의 시험 발사 성공으로 본격적인 우주개발의 전환기를 맞게 됐고, 이 과정을 통해 우리도 우주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우주기술 자립과 우주 강국 도약을 위한 첫 단계로 나로호 개발 사업에 본격 착수한다. 100kg급 소형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발사체 개발을 통해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을 위한 기술과 경험을 확보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는 독자적인 우주발사체 개발의 필요성을 더욱 증대시켰다.

로켓 개발에 열을 올리던 북한은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미사일을 개량해 소형 인공위성 광명성 1호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광명성 1호는 궤도에 진입했다는 증거 포착이 어려워 실패한 것으로 간주했지만, 북한의 로켓 개발은 우리에게 자극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든지 군사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큰 만큼 국가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우리도 발사체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는 2001년 3월 세계에서 33번째로 미사일기술통제체제인 MTCR에 가입했다. 미사일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에 동참하는 동시에 우주 선진국들과 평화적 목적의 우주개발 기술협력의 가능성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기술이전이나 기술협력과 같은 진입 장벽이 더 높아지기도 했다. 특히 1987년 MTCR 창설을 주도한 미국은 발사체 개발 능력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에 발사체 기술을 제공하는 문제에 대해 극히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1970년대 유일하게 일본에 델타 로켓 기술을 제공했지만, 냉전이 한창이던 그때와는 국제적 상황이 달랐다. 미국은 그 이후 어떤 나라에도 발사체 기술을 이전해주지 않았다. 독자적인 발사체 기술 확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다.

STEPI 강희종 연구원은 “우주발사체 기술은 인공위성 발사나 우주탐사를 위한 기본 수단이고 국가 안보, 전략 측면에서도 활용도가 높아 기술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이 때문에 우주선진국들은 발사체 개발에서 MTCR을 통해 기술이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 사람이 자국의 우주기관에 취업해도 주요 업무를 수행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관련 기술의 유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왜 러시아와의 국제협력이었나

나로호 개발에서 러시아와의 국제협력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미국 등 우주선진국에 협력을 타진했지만, 러시아 외에는 모두 부정적이었다. ‘우주 기술은 어느 나라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말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나라는 KSR-Ⅰ, KSR-Ⅱ를 개발할 당시에는 일부 부품을 미국에서 수입했다. 하지만 KSR-Ⅲ를 개발할 때부터는 이것이 불가능했고, 지금도 로켓 관련 부품은 미국에서 수입하지 못한다. 사전 접촉 단계에서부터 미국은 협력 거부 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일본과 우주협력위원회까지 설치하며 일본의 로켓 개발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하지만 미국의 델타 로켓을 카피해 일본이 N-1 로켓을 개발할 당시와는 국제 정세와 국가 간 역학 관계가 크게 달라졌다. 당시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하자 일본도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일본의 핵무장 의지를 잠재울 비장의 카드가 필요했다. 언젠가는 일본이 스스로 대륙간 탄도미사일까지 가능한 로켓을 개발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독자적인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게 된 일본도 다른 나라와의 기술 협력에 대해서는 미국처럼 부정적인 견해를 견지했다. 철저하게 군사적 차원에서 발사체 기술을 관리하는 중국은 기술협력을 타진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프랑스는 기술협의나 자문 정도에는 관심을 표명했지만, 기술 이전이나 핵심 부품 수출에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발사장 운용 부분을 제외한 발사체 관련 기술은 협력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발사체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국가 가운데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협력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발사체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고려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가 유일했다. 당시 러시아는 발사체 기술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높았고, 추진기관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을 보유하고 있었다.

결국, 실행 가능한 동시에 기술적으로도 우수한 러시아가 최적의 기술 협력국으로 선정됐다.

김경민 한양대 정외과 교수는 “왜 러시아와 협력하는지 의문을 갖는데 답은 간단하다. 아무도 협력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혈맹이라 할 수 있는 미국도 한국의 우주개발을 전폭적으로 돕지 않는다”면서 “일반적으로 200kg의 인공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 대륙간탄도탄 능력을 보유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우주선진국은 우주개발 신생국에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러시아와의 국제협력 업무를 관장했던 최은철 전 교육과학기술부 우주기술개발과장도 ‘나로호 개발백서’ 인터뷰에서 “발사체 기술은 장거리 미사일 개발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매우 민감 문제”라며 “그래서 발사체 분야의 기술이전은 국제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우방이지만 이런 문제에 더욱 엄격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협력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나로호 총조립

나로호에서 배우고 익히다

나로호 개발은 국제협력(기본안)과 독자개발(예비안)의 두 가지 방안이 동시에 검토됐다. 국제협력을 통한 개발은 선진 기술을 도입할 수 있고, 개발 기간도 짧고, 발사 성공 확률이 높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사업적·정치적으로 국제협력이 여의치 않으면 즉시 독자 개발에 착수할 수 있는 예비안도 충분히 마련해둔 상태였다.

일각에서는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러시아와의 기술 협력이 원만하지 않고 얻은 것도 없다는 의문을 제기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 발사체 관련자는 연인원 약 6만 명, 총인원 약 800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95% 정도가 러시아 발사체 기술 전문가들이었다.

국내 연구진과 기술진은 이들과 수없이 회의를 반복하고 나로우주센터 조립동, 발사대, 발사 통제동과 같은 발사설비 운용 현장에서 함께 하며 많은 정보를 얻어냈다. 또 이들과 함께 진행한 수많은 설계, 제작, 조립, 시험 과정의 노하우를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계약을 체결하거나 돈을 줘서 보고서나 문서를 통해 건네받을 수 없는 생생한 현장 노하우였다.

나로호는 2009년 8월, 2010년 6월 발사에 실패하지만, 2013년 1월 30일 3차 발사에 성공하며 나로과학위성을 목표궤도에 안착시켰다. 앞선 두 차례의 실패는 오히려 국내 연구진과 기술진이 더 많은 발사체 운영 노하우를 배울 기회로 작용했다.

나로호 개발과 발사 과정에서 얻은 성과는 수없이 많다. 무엇보다 설계, 제작, 시험, 조립, 발사 운영, 발사 등 발사체 개발의 한 사이클을 모두 수행하면서 우주기술 자립에 필요한 발사체 선진국의 운영체계와 경험을 얻었다(발사체 선진국 운영체계).

또 나로호 상단 부분을 자체 개발하면서 구조체, 유도제어, 계측통신 등 요소 기술과 인공위성을 궤도에 투입하는 킥모터 등의 기술을 확보했다(발사체 상단 기술).

발사체 이송·총조립·점검, 지상 지원설비 운용, 발사체 및 발사대 인터페이스·관제, 추진체 충전·배출, 발사체 임무운용, 지상 및 비행 안전 분석·운용, 발사결과 분석 등 발사체 개발의 핵심적인 기술도 체득했다(발사운영 기술).

이와 함께 러시아 설계를 바탕으로 국내 여건에 맞게 발사대 설계 도면을 국산화하고 국내 기술로 제작·설치했으며, 발사 및 비행 상황을 통제하는 발사통제시스템은 국내 IT 기술을 바탕으로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했다(발사대 기술).

한국연구재단이 12개 분야 252개 핵심요소 기술을 대상으로 나로호를 통한 국내 기술 수준 향상도를 분석한 결과, 핵심요소 기술의 국내 수준은 나로호 이전 46.3%에서 83.4%로 향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나로호 개발에는 한화, 현대중공업 등 국내 150여 개 기업이 참여하면서 앞으로 한국형발사체 독자개발을 위한 산업적 기반도 구축하게 됐다. 여기에 국민의 우주 개발에 관한 관심과 독자적인 우주발사체 개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나로호에서 독자적인 한국형발사체로

나로호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도 동시에 기획됐다. 특히 국제협력을 통해 나로호를 개발하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진 이후에도 KSR-Ⅲ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한 30톤급 액체로켓 엔진 개발을 위한 선행연구는 계속됐다. 나로호 이후의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을 염두에 둔 것이다.

예산과 인력 부족에도 30톤급 액체엔진의 터보 펌프, 연소기, 가스발생기의 설계 및 제작, 시험평가를 마쳤으며 2006년 12월 단품 수준의 국산화 시제품 개발을 완료했다. 이어 해외 시험설비를 이용해 두 차례 터보 펌프-가스발생기 연계시험을 수행하기도 했다. 액체엔진의 핵심요소기술을 이미 확보한 것이다. 이는 한국형발사체의 추력 75톤급 액체엔진 개발의 밑거름이 된다.

이와 함께 1단 대형 산화제 탱크와 연료 탱크를 설계·제작하는 선행연구를 통해 1단 추진체 탱크 개발 기술도 확보했다. 이런 선행개발을 통해 얻은 경험과 기술은 한국형발사체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와 함께 나로호 성공 발사 직후 나로우주센터는 한국형발사체 개발을 위한 거대한 시험장으로 변모했다. 특히 실제 연료를 활용해 지상에서 우주환경 모사 시험이 가능한 추진기관 시험 설비는 그동안 국내에는 없던 시설로, 시험 설비 부재에 따른 로켓 엔진 개발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이 시설을 통해 한국형발사체 엔진 개발을 위한 시험이 지속해서 진행된다. 또 한국형발사체 개발 이후에도 차세대 발사체 시험 수행에 필요한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구축된 시험 설비는 모두 9종으로 나로우주센터에는 연소기 연소시험설비, 터보 펌프 실매질 시험설비, 3단 엔진 연소시험설비, 엔진 지상 연소시험설비, 엔진 고공 연소시험설비 등이 구축을 완료하고 운영 중이며, 올해 추진기관 시스템 시험설비를 구축할 예정이다. 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본원에 터보 펌프 대형상사 시험설비, 창업의 산업체에 엔진 조립·기능 시험설비 등이 들어서 있다.

나로호 발사 성공과 선행 기술, 여기에 나로호 발사 이후 구축된 시험 설비 등이 구축되면서 한국형발사체 개발 사업은 순항하고 있다.

한국형발사체는 1.5톤급 실용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투입할 수 있는 300톤 급 3단형 발사체로, 오는 2020년 본 발사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현재 엔진 개발과 연소시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형발사체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7톤급, 75톤급 액체 엔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형발사체는 2단형이었던 나로호와 달리 3단형 엔진으로 구성된다. 1단에는 독자 개발한 75톤급 엔진 4개가 장착되고, 2단에는 75톤급 엔진 1개, 3단에는 7톤급 엔진 1개가 각각 장착된다.

3단에 적용되는 7톤급 액체 엔진은 2015년 말 100초 연속 연소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데 이어 올해는 7톤급 액체 엔진의 최종 임무 시간인 약 500초까지 시험 기간을 점진적으로 늘려갈 계획이다. 또 한국형발사체 1단과 2단에 적용되는 75톤 급 엔진은 주요 구성품인 연소기, 터보 펌프, 가스 발생기 등의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항우연은 신뢰도와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 7톤급 160회, 75톤급은 약 220회의 시험을 수행한다는 방침이다. 2016년 상반기에 조립된 75톤급 액체 엔진 연소시험을 수행하고, 하반기에는 엔진 개발을 완료해 직접 로켓에 탑재해 쏘는 시험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고정환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 본부장은 “나로호와 한국형발사체 개발 과정을 통해 국내에 발사체 액체엔진 시험 인프라를 갖췄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국내에는 시험 설비가 없어 액체엔진 개발에 어려움이 컸다. 액체엔진 시험 설비가 구축되면서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을 위한 시험이 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고 본부장은 “시험설비 뿐 아니라, 3단으로 구성되는 한국형발사체 대부분을 우리의 기술로 개발하고 있으며, 올해는 시스템 상세설계와 액체엔진 연소시험에 매진하게 된다”며 “자체 기술로 개발한 액체엔진의 지상 연소시험 뿐 아니라, 실제 비행을 통한 확인을 위해 내년 12월을 목표로 시험발사체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나로호 개발과 발사를 통해 얻은 기술과 경험, 자신감은 한국형발사체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한국형발사체는 우리나라가 자주적인 우주능력을 확보해 우주 경쟁력과 국가안보의 자주권을 강화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나로호가 그랬듯 한국형발사체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환호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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